🍚 2년 만의 인터뷰다. 같은 작품으로 다시 인터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이 잘 됐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완결된 지는 좀 됐지만 '도문센'의 성공적인 마무리 소감부터 질문드린다.

 

🖋️ = 책장을 덮고나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뭔가 하고 싶어지는, 그런 힘을 주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무사히 완결해내기'를 목표로 잡았었는데 그건 확실히 성공했다. 처음 세웠던 목표를 완수했다는 뿌듯함에, 드라마화나 애니화같은 외부적인 성과도 따라와 주어서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

  물론 역량이 부족했던 부분도 당연히 인식하고 있지만 되돌아보며 괴로워하기 보다는 다음 작품에 더 에너지를 쏟자고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 일상툰 대표 작가의 첫 스토리 웹툰이라 화제를 모았다. 스토리가 있는 웹툰을 그리면서 어려웠던 점, 특히 막혔던 구간은 없었는지? 후기에서도 어려웠던 경험을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설명해주시면 좋겠다.

 

🖋️ = 첫 스토리 웹툰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편인 한군과 함께 작업했던 <어른이라 다행이야>라는 게임회사 만화와, 임신출산 만화인 <내가 태어날 때까지>가 있다.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는 <도토리 문화센터>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욕심을 능숙하게 조절하지 못했다. 이런 것도 하고 싶고 저런 것도 하고 싶고...

  문화센터 안에서의 즐거운 우당탕탕 에피소드들을 더 넣고 싶었는데 각 인물들의 문제도 해결해야해서 많이 분주했다. 처음 이야기를 만들때에는 만화의 전체 톤을 가볍게 잡으면, 무거운 부분도 개그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기업의 부정과 비리와 방화같은 범죄를 어떻게 개그로 얼렁뚱땅 넘어갈수가 있을까...하려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못했다. 개그와 환타지와 현실 표현 사이에서 균형잡는 것이 어려웠다.

 

 

 🍚 다시 읽다가 느꼈는데 근속 15년 길지 않다. 고 부장 아직 젊다. 도문센 완결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고 부장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 = 스타트업으로 성공했으면 좋겠지만...창업의 현실을 알고 있어서 쉽게 그런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빡세겠지만 그래도 도토리 문화센터에서 얻은 경험을 되새기면서 자신을 돌보며 일했으면 좋겠다. 옆에서 소운이가 잘 보좌하고 있을 것 같다. 탕비실도 재깍재깍 잘 채워놓고 겨울에 배탈이 잘 나는 고부장에게 성능좋은 핫팩도 미리 챙겨주고...

 

🍚 애니메이션화 소식도 반가웠지만, EBS라니. 뭔가 신기하면서도 '도토리 문화센터'와 잘 어울린다. '도문센'이 어떤 애니였으면 좋을까, 

 

🖋️ = 나는 예능프로그램을 별로 안 보던 사람이었는데, 육아를 하면서 밤에 맥주를 마시며 멍하게 티비를 보고 웃는 경험을 했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육체와 정신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을 때, 아무 생각없이 웃게 해주는 컨텐츠가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게됐었다.

  하루종일 각자의 생활에 힘을 다 소진한 사람도 실없이 웃으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 드라마화도 앞두고 있다. 어떤 캐릭터, 어떤 장면의 실사화를 가장 기대하고 있을지.

 

🖋️ = 기대되는 장면은 역시 뜨개질 교실 첫 장면인 옥길과 소운의 뜨개 배틀이나, 도토리 야유회같은 신나고 동적인 장면들이다. 내가 가장 즐겁게 그린 부분이기도 하다.

 

 

🍚 OST '쌀쌀한 그대' 작사를 작가님이 했다고. 만화에 있던 "살모사 같은 너의 그 미소, 살포시 내 마음을 휘감네' 왜 빠졌나. '공연히 커피잔만 들었다 놨다', '지하철까지만 데려다줄게, 우산이라도 가져갈래' 등 직관적인 트로트 가사들이 좋았다.  첫 작사일까?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을까?

 

🖋️ = 실제 노래로 만들어졌을 때 원작을 모르면 편하게 따라 부르고 이입할 수 있는 가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노래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확산성을 생각해서 좀 더 여러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사가 좋을 것 같았다. 작곡가분께서 주신 멜로디에도 어울리지 않았고.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취향인 눈물순애남의 사랑과 이별을 테마로 잡고 1절은 이별 장면, 2절은 첫눈에 반한 순간을 가사로 표현했다.

  작사는 예전에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 '재밌겠다!'라는 말초적인 판단으로 냉큼 하겠다고 하고는 꽤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 해보는 거라 무섭기도 하고 전문가도 아닌데 망치면 어쩌지 싶어 후회도 했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생각보다도 더 재밌었다.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모든 걸 다 해야하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새롭고 재밌었다.

 

🍚 오리진의 '드라이브 유어 셀프'도 전체 스토리에서 중요한 노래 아닌가. 이것도 나올 계획이 있을까.

 

🖋️ = 드라마에서는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는 계획에 없다고 알고있다.

 

🍚 고두리 부장은 도토리 문화센터에서 취미의 멋짐(과 일하기 싫음)을 배웠다. 작가님은 '도토리 문화센터'를 그리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 = 시작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끝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늘 이야기의 앞부분, 3회차까지만 쓰고 덮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 생활툰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 때문에 독자와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독자가 에피소드 하나하나, 작가의 말 한 마디에도 평가를 내리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근래 생활툰 작가의 삶이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는지. 어떻게 해소했을까?

 

🖋️ = 생활툰 작가인 나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모든 걸 촬영하고 내보이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인터넷 화면에 보이는 국소적인 부분이 오해를 일으켜 비난받는 일들이, 표현하는 일이 직업이 아닌 평범한 사람에게도 한번쯤은 일어나는 일이 된 것같다. 모든 맥락과 상황, 그 순간의 진실을 짧은 릴스나 몇 줄의 글에 담기는 불가능하니까.

  그런 면에서 내가 가진 생각들을 50컷 내외로 천천히 세심하게 전달할 기회가 나에게 있고, 그걸 가까이 다가와서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있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잘못을 했을 때 가족들까지 언급이 되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이런 부분은 생활툰 작가만의 특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해소하는 방법은 딱히 찾지 못했다.

  남의 말, 남의 의견들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엄청나게 흘러들어오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옛날처럼 내가 직접 얼굴을 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까지도. 진짜 투머치오피니언이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덕에 시야가 넓어지고 편협한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균형잡는 것이 꽤 어렵다.

  귀가 상당히 얇은 편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휘청일 때가 많다. 진짜 나의 솔직한 마음이 뭔지, 내가 말하고 표현할 때 스스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침범당하지 않는 내 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인터뷰도 여러번 읽어보면서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스스로에게 많이 물어보고 있다.

 

🍚 다시 '어쿠스틱 라이프'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일지? 이전에는 일상툰의 문법 때문에 스토리물이 어색했다면, 이번에는 ‘시차’처럼 스토리물과 다른 점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는지. 새로운 스토리물 계획은 없을까?

 

🖋️ = 손에 가장 익은 도구를 다시 꺼내든 기분이다. 기분은 그랬는데 6년만이라 작업 과정을 다시 몸에 익히는 데에 한참 걸렸다. 도토리 문화센터 같은 경우 전체 디지털 작업을 했지만, 어쿠스틱라이프는 편집과 채색 외에는 전부 수작업이라 펜의 필압에 익숙해지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스토리물의 경우에는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 이야기가 굴러가고 있어서 언제나 마음에 여유가 없고 날카로웠다. 일상 생활에서도 항상 넋놓고 있어서 실수를 많이 했다.

  대신 일상툰은 한 회차로 이야기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다음 회차로 넘기는 기술이 불가능해서 콘티짤 때 배는 더 괴롭다. 새로운 스토리물은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