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파파

올해 최고 흥행영화 원작 '좀비딸'

이윤창 작가님 서면 인터뷰(2025.8)

 

🍚 '좀비딸'은 아빠와 딸(어쩌면 삼촌과 조카), 그리고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보통 모성애를 다루는 작품은 많은데 부성애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왜 부성애를 이야기하려 했을까? 둘이 친자 관계가 아니라는 설정은 왜 넣었는지.

🖋️ = 물론 자식을 둔 부모만큼의 부성애를 제가 감히 느껴보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내 고양이를 통해 ‘나 자신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처음 알게 되었고,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어도 기른 정 또한 낳은 정 못지 않게 크고 소중하단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웹툰을 구상하며 몇몇 격투 같은 액션 씬도 있을거라서, 자연스레 주인공은 30대 중후반 정도의 남성으로 그려졌습니다. 더욱이 정환은 수아의 아빠가 됨으로써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는데, 그 희생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출생의 비밀이란 클리셰가 진부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맛있는 클래식이 없기에 이 출생의 비밀이 나오는 장면엔 제 모든 연출력을 쏟아부어서 '진부하지 않고 정말 재밌다'라는 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 '인간에서 사람으로' 만든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인간(이문기)은 사람답지 못하고, 어떤 좀비는 사람 같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 =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인간에서 사람으로 라는 말은 제가 고등학교-대학 시절 미니홈피 제목 등 종종 쓰던 말이었습니다. 그땐 이상한 철학에 빠져있고 내안에 흑염룡이 날뛰던 시기기도 해서 지금 보면 조금 창피한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생각을 빌려보자면, 생물학적 관점의 영장류 중 하나인 인간이란 동물로 태어났으나 사람이 되기 위해선 사회에 어우러져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배려와 덕이 있어야 한다...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단 더 유연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뭐....' 같은.

 

🍚 이장님 캐릭터도 인상 깊다. 어떻게 아빠는 자기 딸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이장님에게 아들, 딸보다도 마을이 자식 같은 존재였을까.

🖋️ = 정환의 부성애를 강조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캐릭터로 그린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로 인해 더욱 확고한 그의 신념이 느껴지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자신과 가족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로선 최악이지만 어떤 시대에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영화에선 다리 찢기 묘기를 하는 장면이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 공교롭게도 코로나19와 겹쳤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 감염과 확진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등 연상되는 지점이 많았다. 연재 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벌어지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 = 좀비딸 관련 포스팅들을 보다보면 코로나19가 터지고 정환에 대한 여론이 안좋아져서 만화를 일찍 끝냈다는 글들도 한번씩 보곤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딱 정해놓은 레이스대로 만화가 흘러갔고 오히려 정부의 지침에 반대하는 정환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어 이 만화가 한 층 더 심도있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명확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 주인공인 이정환은 수아를 지키겠다는 욕심으로,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 도덕적 결함을 안고 어떻게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 = ‘나였어도 정환같은 선택을 했을것이다...’ 라고 공감을 해주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그만화다 보니 좀비들이 하나씩 나사가 빠져있어서 컨트롤이 가능했던 것도 한 몫했을 테지만요.(웃음) 그리고 누나의 사고에 대한 자책과 그로 인한 정환의 책임감에 사람들이 그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쓰는 느낌이다. 개그 욕심이라고 풀이해야 할까? 아니면 작가님에게 너무 신파로 가지 말자는 원칙이 있는지.

🖋️ =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웃는 감정을 좋아합니다. 과하게 표현하지 않고 덤덤하게 웃기고 덤덤하게 울림을 주는게 제가 추구하는 만화관입니다. 이 비율을 잘 맞춰야 하는데 종종 실패를 해서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더 발전을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 정환이 수아에게 문기를 물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면, 좀 더 오래 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 = 문기에게 수아가 좀비인걸 들킨 이상 더는 숨어 사는게 불가능해졌습니다. 문기는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이 수아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었고 정환에게는 더 이상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환 역시 살인만큼은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서 정환은 수아에게 문기를 물라고 지시했지만 이것은 100퍼센트 저의 착오입니다. 수아를 좀비가 아닌, 사람처럼 훈련을 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이고 신념인데 제가 그만 포켓몬 개그에 눈이 멀어 개그50, 진정성 있는 스토리 50의 비율을 깨버리고 개그 120으로 풀악셀을 밟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연출된 수아의 돌발행동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감독님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 해피엔딩으로 외전을 내실 계획은 없으신지 궁금하다. 왜 세상은 모두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정환이는 죽는 엔딩을 구상했을까.

🖋️ = 정환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이 이야기가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정환은 법을 어겼고, 사람을 죽게 했고, 사람들을 위험하게 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이 있었기에 마침내 치료제가 개발되는 등으로 마냥 그를 미워할 수 없게끔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숭고한 희생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비록 슬프지만 해피엔딩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고양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키우는 고양이 중 애용이와 가장 닮은 고양이는? 아이디어를 준 고양이에게 좀비딸 IP가 확장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주는지도 소소한 궁금증이다.

🖋️ = 2014년에 ‘뱅구’라는 뱅갈 고양이를 맡아 키우게 되었는데, 이 녀석은 항상 제 손이며 다리, 허벅지 등을 물며 장난을 칩니다. 심지어 “윤꺙!” 하고 제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새벽마다 울어서 잠을 깨우고 개냥이 성격이 강하며 시큰둥~한 표정 등을 자주 짓는데 그 모습들이 애용이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세마리의 집사가 되었는데 뱅구랑 둘이서 부엌에 있으면 조용히 뱅구에게만 간식을 줍니다. (웃음)

 

🍚 작가님에게 같은 일이 닥친다면? 사랑하는 김진 작가가 좀비에 감염된다면 집에서 곱창을 구워가며 키우실 생각인지?

🖋️ = 충남 서산에 위치한 처가에 살포시 두고 와야.....(좀비딸)

 

🍚 좋아하는 웹툰이 영상으로 확장되는 것은 팬의 입장에서도 행복한 일이다. 작가님의 소감이 궁금하다. 벌써 영화를 3회차 관람을 했다는 SNS 글도 봤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캐릭터를 꼽아준다면.

🖋️ = 영화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역시 기뻤지만, 정말 특별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촬영장에서 처음 배우님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좀비딸을 2년간 연재하며 인물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얼굴을 그리다보니 그들과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는데, 연재가 끝나고 다시는 이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꽤 오랫동안 공허했습니다. 그런데 촬영장에서 배우님들께서 자신을 이정환이라 소개하고 수아라고 소개하는 모습에 '아 내 잃어버린 친구들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었구나' 하고 복받쳐 올랐습니다. 좀비딸을 재밌게 봐주신 팬분들이라면 분명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실 거라 덩달아 기쁘기도 했습니다.

  제 고향과 촬영지가 남해로 같다보니 더더욱, 고향에 내려가 따뜻하고 정겨운 이야기를 듣고 온 느낌입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즐겁고 편해져서 앞으로도 계속 관람할 계획입니다. 좋아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수아의 훈련을 위해 배를 타고 섬으로 이동할 때의 정환입니다. 동 터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정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표정에서 수아의 훈련에 대한 희망, 그러면서도 그가 앞으로 겪게될 많은 고난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련해지고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밤순과 수아의 티키타카 장면은 항상 즐겁습니다. 계란밥 씬에서 애용이가 할짝 할짝 하는 장면도 매우 좋아합니다.

🍚 좀비딸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고, 실사 영화로도 재탄생했다. 이모티콘 등 캐릭터 사업도 이어진다. 왜 '좀비딸'이 이렇게 인기 있다고 생각하는지.

🖋️ = 확실히 애용이 지분이 9할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고양이 집사다 보니 늘 고양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그린게 도움이 컸습니다. 수색을 하는 군인이 애용이를 보고 '나비야~'라고 부르자 '애용! 김애용!'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애용이가 처음 화제를 일으켜서 많은 분들이 좀비딸을 찾아주셨습니다. 이 장면이 화제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운이 많이 따라줬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애용이로 인해 처음 좀비딸을 접하신 분들이 정환의 이야기에도 재미를 느끼실 수 있도록 이야기를 잘 그려낸 것도 분명 한 몫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