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한 계기가 궁금하다. 가장 처음 이야기의 원형을 떠올렸던 순간이 기억나시는지.  소통하지 않는 부부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일까? 수어 통역사와 대변인은 모두 누군가의 입이자 귀다. 왜 이런 직업을 주인공에게 부여했는지.

 

🖋️ = 소통하지 않는 부부라는 설정에 앞서, ‘부부가 협박전화를 한다’라는 아이디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개인적인 경험담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한 통의 전화로 삶이 바뀌어본 적이 있습니다. 몇년 전, 보이스피싱 피해를 실제로 당했습니다. 그때 전화에 홀려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결국 절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경험이 제 안에 크게 자리를 잡았는지, 어느 날 문득 ‘쇼윈도 부부가 협박전화를 한다면?’이라는 아이디어가 태동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완성된 컨셉이 “실어증에 걸린 아내가 독설가 소시오패스 남편에게 협박 전화를 걸었다가 뜻밖의 내연녀가 되는 자급자족 치정 로맨스”였습니다.

  드라마는 스릴러를 강조하고 있지만, 저는 집필 당시 로코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각기 인물들에게 하나씩 비밀이 있었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스릴러라고 해주시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직도 원작의 장르는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음성변조 전화였기 때문에 오히려 속마음을 더 내보일 수 있었고, 그래서 시작은 소통하지 않는 부부여야 했습니다. 여기에 아이러니를 더 추가하기 위해, 부부는 서로 소통하지 않지만, 정작 그들의 직업은 남들과 소통하는 일들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얘기가 아닌, 남의 말이나 전하는 부부이지요. 이렇게 극과 극인 두 사람을 잇는 건, 사실상 사랑과 가장 거리가 먼 ‘협박’전화. 로맨스의 플롯은 결국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처음 시작은 정 반대에서 시작하길 바랐습니다.

 

 

🍚 작품을 위해 수어를 공부하거나, 통역사에 대해 어떤 자료 조사를 했는지도 궁금하다.

🖋️ = 수어 관련 도서, 영상, 그리고 수어통역사들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 로맨스 웹소설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남자 주인공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라고 생각한다. 백사언을 어떤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나. 

🖋️ = 초반부 백사언은, 협박전화를 걸겠다고 다짐한 희주에겐 상당히 벅찰 ‘독설가’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겉보기엔 집안부터 능력까지 완벽하나, 결핍이 많은 인물로 그리고 싶었고요. 그의 혀가 독해진 이유. 되려 입을 열지 않는 희주 곁을 좋아한 이유. 앵커부터 대변인까지 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말이나 전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전부 백사언이라는 핵심과 연관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겉보기엔 아내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쓰는 소시오패스 독설가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그 나름대로의 애정과 서투른 사랑이 있었다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머리에서 떠올리고 글로 써 내린 이야기가 영상으로 구현된 소감은. 설정했던 남녀 주인공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진 외모나 행동, 생각보다 너무 잘 나온 장면 등을 집어준다면.

(+개인적으로는 희주가 떨어진 절벽이 너무 가파른 산꼭대기라서 놀랐다) 

 

🖋️ = 오랫동안 영상 대본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늘 내가 쓴 글이 영상화가 되는 것을 갈망하곤 했는데요. 그래서 많이 감격했고, 떨렸고, 긴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발가벗겨진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웹소설 독자의 입맛을 고려한 글이, 보다 대중적인 매체와 시청자 앞에서 소개된다고 생각하니 사실은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초반에는 경직된 자세로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하지만 연출과 각색, 배우들의 열연이 합쳐진 드라마는 정말로 매력적이었어요. 그렇게 웹소설과 영상 매체의 차이점을 적나라하게 느껴보기도 했고, 나중에는 더 큰 열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원작 작가로서 반성을 한 부분도 있습니다. 연재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뭉개고 가는 부분이나 스스로 타협하고 넘어가는 순간들이 있는데 조금 더 치열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또한, 제가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백사언의 목소리는 발성이 귀에 딱딱 꽂히고, 좌중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연석 배우님이 푸른 단상 앞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그냥 백사언으로 보였습니다. 칼 같고 냉랭한 모습을 주로 보이지만, 실은 그 이면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인물입니다. 그 미묘하고 모순된 눈빛이 특히나 백사언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채수빈 배우님은 비주얼적으로도 그냥 희주였어요. 자존감 낮고, 무기력하고, 체념에 익숙한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1화에서 스스로 알을 깨듯 “개새끼야!”하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제가 상상했던 희주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 협박범의 등장으로 시작되고, 끝까지 읽다 보면 로맨스 장르 치고 은근히 폭발도 액션도 사상자도 많다. 왜 로맨스에 스릴러 요소를 집어넣었을까.

 

🖋️ = 처음부터 스릴러를 넣어야겠다고 의도했던 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원작이 로코라고 생각하는데요.(웃음) 왜냐하면 원작에서는 협박전화로 시작된 전화가 뜨거운 사랑으로까지 이어지기 떄문에…. 하지만 아내가 남편을 협박하고, 제3자가 아내를 협박하고, 누군가 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는 백그라운드가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등장한 장면들인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백사언이라는 인물을 만들면서 생긴 집안의 비밀과, 그 비밀을 폭로하고 다루는 과정에서 스릴러가 파생된 게 아닌가 합니다.

 

🍚 다이얼판을 한참 놓고 봐도 406과 675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좀 더 힌트를 준다면?

 

🖋️ = 그 부분이 당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독자들의 의견을 잘 알고 있습니다.ㅎㅎ 그때 희주는 남편을 잃고 제정신이 아닐 때라서 혼자 어떻게든 연관을 짓고 싶어 합리화를 하는 단계였습니다. 4와 6 사이에는 5가 필요하고, 그런데 마침 5가 675에 있고…. 이런 식으로 남편을 찾고 싶어하는 한 여자의 미친 소리쯤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희주를 상대하던 직원도 진상이라고 토스를 한 것입니다. ㅎㅎ

 

🍚 초반 양가 어머니와 만나는 자리에서 '실어증이 좋아졌다'는 말이 있다. 시어머니도 희주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 = 아마도 그건, 희주 엄마인 연희가 괜히 포장을 하려다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뒤에 나오는 대사, “계속 말을 못하는 게 낫지 않겠니?”가 핵심인 것 같고요. 아마 시어머니는 희주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 사실 희주가 말을 안 하다가 잠시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발적으로 입을 앙다물고 있었는지도 헷갈린다. 혹시 간간이 희주가 대화를 나눴거나,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말을 건 대상이 있었는지.

🖋️ = 원작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아무런 문제도 없던 희주가, 엄마의 강압으로 입을 다물고 실어증인 척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십년이 넘어가고, 십 오년이 넘어가면서… 그 감옥에 너무 갇혀버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저 연기였을 뿐인데. 어느 순간 진짜로 입을 여는 것이 두려워진 것이죠. 재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엄마를 위해, 그 모든 비밀과 무게를 어린 아이가 짊어지고 있었으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입을 열고 싶은 욕구도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진짜로 스스로가 실어증인 것마냥 남들 앞에서(특히, 비밀을 들키면 안 되는 남편이나 그집 사람들 앞에서) 더 입이 굳어버렸을 거고요. 대신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었던 치매가 걸린 아버지 앞에서는 말을 했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재혼가정으로 오기 전의 희주,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의 진짜 희주를 아는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구요.

 

🍚 진짜 백사언을 아르간까지 데려갔다고 했다. 그 이후의 행적은?

🖋️ = 그 부분을 제대로 묘사하진 않았지만, 내전이 벌어지던 지역이었고. 그 폭풍에 휘말려 죽게 ‘내버려뒀다’가 맞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백사언은, 어릴 적 진짜 백사언이 죽는 장면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이 그의 죽음을 방조한 것이죠.

 

🍚 희주를 그렇게 아끼고 소유하고 싶었던 백사언이 왜 수화는 안 배웠을까.

🖋️= 백사언의 마음 안에는 희주를 아끼면서도,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은, 엮이고 싶지 않은, 좋아하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마음도 있습니다. 그의 방어기제 같은 것인데요. 그녀를 위해 수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녀를 더 이해하겠다는 의지이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비밀과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백사언으로서는, 마음의 벽을 치기 위해 더 냉정하게 대하고, 소통하지 않은 겁니다. 그간 수어를 배우지 않았고, 그녀와 대화하지 않은 건…. 그렇게 희주에게 한발 다가갔다가 속절없이 빠져버릴 자신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님의 웹소설을 쓰게 된 계기, 데뷔작, 필명의 의미, 여러 작품 가운데서 '지거전'이 갖는 의미도 궁금하다. 

🖋️ = 오랫동안 대본을 쓰다가,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같고, 포기하고 싶을 즈음. 한 번만 더 옛날처럼,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 라는 마음에 로맨스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읽어주든 말든 저 스스로를 위한 한풀이처럼 글을 썼어요. 그것이 데뷔작인 ‘난공블락 로맨스’였고 그 기세를 타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필명은 제가 고등학생 때 지은 아주 오래된 필명입니다.  당시 건어물녀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때였는데요. 밖에서는 멀쩡하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폐인처럼 굴러다닌다는 뜻이었거든요. 그 모습이 꼭 글을 쓰는 제 모습 같기도 하고, 영혼의 정체성 같기도 하여 별 고민 없이 필명으로 삼았습니다.“더 멋진 필명으로 지을 걸.”하는 후회는 늘 하고 있습니다. ^^

  그 중에서도 <지금 거신 전화는>이 갖는 의미는, 어떤 도전 의식이지 않나 싶습니다. 전화가 부부의 매개체로 나온다는 점도 그렇지만, 제가 집필한 소설 중에서 가장 분량이 짧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 소설을 기획할 당시에는 2시간 짜리 킬링타임 영화라고 생각하고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드라마화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분량이 넉넉하게 나올까? 라는 걱정부터 했습니다. 소재나 전개가 기존의 웹소설들과는 좀 다르다는 의견도 있어 불안했지만, 꼭 써보고 싶었던지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경향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상 급하게 쓰기도 했고, 카카오 페이지라는 플랫폼에는 처음 런칭한 글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걱정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 이렇게 드라마화까지 되어 더 많은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외전 계획은 얼마나 더 있을지도 귀띔해주신다면.  

🖋️ = 완결 후에 외전, 특별외전, 육아외전, 벌써 세 챕터나 썼습니다. ㅎㅎ 이제 외전은 더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백사언의 깊은 내면에는 “괴물은 그냥 태어나기도 한다”라는 백장호 총재의 말이 뿌리깊게 남아 있습니다. 그건 백사언이 갖고 있는 진짜 공포이기도 한데요. 희주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수록, 아마 그 말이 발목을 잡았을 겁니다. 백 총재가 그랬고, 심규진이 그랬고, 진짜 백사언마저 잔인했으니 당연한 걱정일 수도 있겠구요. 보통은 행복한 육아 외전으로 작품을 마무리하지만, 저는 그의 걱정과 공포를 한번 더 그의 눈앞에 가져왔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행복한 커플이니, 그들의 부모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일 겁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마지막 외전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