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리스너' 쥬드 프라이데이 작가님 서면 인터뷰(2022.8)
🍚 '굿리스너'의 주인공에게 쥬드라는 이름과 만화가라는 이름을 줬습니다. (쥬드 프라이데이) 작가님 본인을 투영한 인물일까요? 그렇다면 쥬드의 성격적인 면에서 어떤 부분이 작가님과 가장 많이 닮았나요.
🖋️ = '굿 리스너'를 기획할 당시 저는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진눈깨비 소년'을 완결하고 여러 작품을 기획했지만 네이버 편집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죠.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또 하나의 문제는 제가 제가 쓴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기에 실력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친구의 조언으로 그림을 다른 작가에게 맡기면서 간신히 네이버에 연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만 그리면 됐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작품을 하나 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릴 수 없는 이야기는 그걸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면 되는 거고, 제가 그릴 수 있는 작품을 써보고자고요. 제가 잘 그릴 수 있는 스토리를 떠올리다 보니 아예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캐릭터를 가져오게 됐습니다.
이 쥬드 씨라는 인물은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진눈깨비 소년'에도 만화가로 등장합니다. 왜 자신을 자꾸 만화 속에 넣어 판타지를 깨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진눈깨비 소년'을 그리는 동안 저는 그런 사람들이 제 주변에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들과 농담을 나누며 하루를 보내면 즐겁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쥬드 씨라는 인물이 얼마나 저와 닮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머리카락이 검은색이고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물론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나중에 스토리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는 합니다만) 햄버거와 양념갈비 새우햄볶음밥을 좋아합니다.
성격은 잘 모르겠네요. 요즘엔 제가 어떤 성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좀 날카롭고 예민했는데 아이를 기르면서 그런 면은 다듬어진 것 같고 대신에 저와 제 주변에 대한 책임감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선 침착하고 어떤 면에선 조급하기 이를 데 없어 괴상한 성격인데 이런 점이 닮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제가 되고 싶었던 저를 그렸던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 되고 싶은 미래를 정해두고 직선으로 달리고 있었고, 극중의 쥬드는 유유자적하며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납니다. 아마도 되고 싶었던 자신을 그려 넣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쥬드는 항상 내담자에게 '들어만 준다'고 강조합니다. 작품의 제목도 '굿리스너'입니다.
사람은 어쩌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의 첫 단추가 항상 지금 생각나는 말을 해보라는 것이고, 무인도에서도 배구공에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거는 것처럼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 = '굿 리스너' 극중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때로는 가족이어서 오랜 친구라서, 애인이라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요.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아는 사람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죠.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몇 년 전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내게 말했던 고민들을 그의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가족들은 친한 친구들은 들어봤을까?'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저 사람은 처음 보는 제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건 그 얘기를 듣고 제가 뭔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 어떠한 형태의 해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그 듣는 사람이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조언을 하거나 해결해주려고 했을 텐데 그건 부담스러운 거죠. 어떠한 문제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시간을 들여 자신의 힘으로 정리하고 해결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혹은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것도 있죠. 하지만 뭘 숨기고 있으면 역시 답답한 법이니까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어쩌면 또 다른 자신의 투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고생한다' 위로하기도 하고,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가봐' 응원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게 어때 하고 설득하는 거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쥬드가 그려내는 한 장의 그림은 어떤 장면을 담은 것일까요? 내담자가 이승에 남겨두고 가야 하는 사람들과 가장 행복했던 혹은 가장 소망한 순간을 담은 것인지요?
🖋️ = 처음 생각했던 것은 편지입니다. 죽었기 때문에 편지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쥬드 씨가 이야기를 듣고 남아 있는 가족, 연인, 친구에게 대신, 이를테면 대필편지를 써준 거죠.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으니, 그의 혹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을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행복했던 혹은 가장 소망했던 순간이었을 수 있겠죠. 때로는 긴 글보다 사진 한 장이, 그림 한 장이 더 많은 담기도 하죠.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이 있어 나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내가 떠나도 너무 슬퍼하지 않고 더 멋진 인생을 살아주길 바란다. 그런 편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에피소드 속 악인들은 사연 없이 나쁜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렇게 그리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 = 특별히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습니다만 돌이켜보니 그런 이야기가 되었네요. 아마도 하나의 에피소드를 화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미니멀한 구조를 갖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주인공인 쥬드 씨도 이야기에 보조적인 인물로만 등장하게 됩니다.
🍚 남산타워(남서울터미널)를 통해 떠나면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요?
🖋️ = 작품 상에서는 남서울터미널을 떠나면 달에 있는 종합터미널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게 됩니다. 에필로그에 이 종합터미널이 나오는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만, 그릴 것이 너무 많아 그만두었습니다. 언젠가 그 종합터미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 상담소를 물려준 선배는 어디로 떠났나요?
🖋️ = 아마도 지금쯤 산티아고의 어디쯤 걷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포우(고양이)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 = 귀여움입니다.
🍚 왜 쥬드는 옥수수 차를 마시나요?
🖋️ = 실제로 옥수수 차를 좋아합니다. 커피도 좋아하지만, 하루에 몇 잔씩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입이 심심할 때는 옥수수 차를 마십니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데 도움을 줍니다.
🍚 햄새우볶음밥과 새우햄볶음밥의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요?
🖋️ = 햄새우볶음밥은 햄이 많고 새우햄볶음밥은 새우가 많다는 설정이지만 사실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 작품 중간중간 컷에 한강이 들어간 풍경이 자주 나옵니다. 이외에도 호수나 폭포, 바다 등이 배경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눈에 밟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 = 아마도 기자님이 물을 좋아하셔서 그런 풍경이 더 유심히 보셨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의 합리적인 의심이 틀렸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바다나 강이 나오는 장면이 많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마도 제가 그 장면을 풍경을 그리는 것에 끌리는 것이겠죠.
생각해보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강이나 구름, 파도를 채워 넣는 것이 꽤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저는 주로 하늘 아래 나무가 쏴아- 하고 흔들리는 장면을 주로 쓰는데, 너무 우려먹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두려워 이번엔 한강 등을 많이 활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밤의 시간을 표현하는데 한강에 반사된 도시의 불빛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님에 대해서도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계기로 만화를 그리게 되셨을까요? 인도에서 거주하게 된 이유와 차기작에 대한 구상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실패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뭔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남아있던 모양입니다. 회사를 다니며 계속 시나리오를 썼는데 어느 날 네이버 도전만화에 누구나 만화를 올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길에서 만나다'라는 작품을 연재하게 됐습니다. 서울의 골목길을 소개하며 소소한 대화의 즐거움을 전하는 것이 독자분께 흥미를 드렸는지 8개월 정도 후 정식으로 네이버웹툰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네이버웹툰에서 받는 원고료가 회사에서 받는 돈과 차이가 너무 커서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내가 인도에 가자고 권했습니다. 인도에는 아내의 부모님이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그 사업을 돕는다면 저는 만화를 더 본격적으로 그릴 수 있을 거라면서요. 하여, 2011년 인도로 갔고 아직도 그곳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차기작은 여러 구상이 있습니다. 로맨스부터 SF까지 다양하지만 어떤 작품이 편집부의 선택을 받아 연재를 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굿 리스너'가 독자분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런 분위기의 만화가 제게 어울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런 구도의 이야기에 주인공이 좀 더 사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작가님은 '굿 리스너'신가요? 아니면 반대로 주변에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대나무숲과 같은 공간이나 존재를 두고 계시는가요?
🖋️ = 육아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하루에 250번씩 아빠를 부르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 몹시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를 찾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군요. 곧 자신만의 세계를 찾고 더이상 아빠를 찾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가 될 겁니다. 가급적이면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아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게 분명하니까요. 모두가 모두를 위한 굿리스너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적어도 나의 아이에게만큼은 굿리스너가 되고 싶은 생각입니다.
다른 영역에서는 <진소클럽>이라는 '진눈깨비 소년' 애독자클럽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베이스캠프는 카톡 오픈채팅방인데 거의 매일 음성채팅을 통해 팬분들을 만납니다. 마치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오늘 먹은 메뉴에 대해서도 어제 본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그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꽤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