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자식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면?

    크로노스처럼 냉정하게 자식을 먹지는 않을 테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키울 수도, 버릴 수도 없을 것이다. 보관은 또 어디다 한단 말인가. 그래도 자식인데 냉장고에 넣어둬도 될까?

    '닭강정'은 이처럼 황당한 설정을 기발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개그 웹툰이다.

    중소기업 '모두기계'의 최선만 사장에게는 외동딸 민아가 있다. 예쁘고 강단 있는 그녀를 고백중 인턴도 남몰래 짝사랑 중이다.
    닭강정을 사 들고 놀러 온 민아는 회사에 새로 놓인 의문의 기계에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가 굉음과 함께 닭강정으로 변하고 만다.
    최 사장과 고 인턴은 닭강정을 민아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기계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실종되거나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접한다.

    이 웹툰의 가장 큰 매력은 도무지 다음 이야기가 예상되지 않는 기발한 전개다.
    사물의 마음을 읽는 원숭이, 200년째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외계인 등 독특한 캐릭터들이 튀어나와 재미를 주고, 클리셰를 가볍게 부순다.

    닭강정 한 알과 아빠, 그리고 그를 돕는 인턴 직원까지 총 3명이 활약하는 이야기다.

    사이사이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들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초반부에 잠깐씩 나왔던 백정 닭강정 직원 4인방, 해고된 직원, 한탕을 꿈꾸던 연구원 등의 제각기 다른 사정이 맞물리면서 결말까지 함께 내달린다.

    도무지 다음 이야기를 예상할 수 없고 즉흥적으로 전개되는 것 같던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순간 당신도 외칠지 모른다. 박지독 작가는 천재다.

🍚 작가님 소개 부탁드린다

🖋️ 필명 땅콩. 30세. 남자. 현재 전업 작가입니다.

 

🍚 데뷔 과정도 궁금하다. '여고생 드래곤'은 베스트도전이나 공모전 등을 이른바 '웹툰작가 데뷔의 정석 루트'를 밟아 나온 작품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만화가를 꿈꿨는지, 처음 인터넷에 올리고 나서 1년 뒤 정식 연재하게 될 때까지의 과정도 궁금하다.

 

🖋️ 원래부터 웹툰 작가를 꿈꾸고 있었고, 공모전 입상을 통해서 정석적인 데뷔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여고생 드래곤'을 처음 인터넷에 올리고 1년 동안 공백이 있었던 것도 다른 작품으로 공모전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공모전에 여러 번 낙선하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먹고살던 중에 연습작으로 그렸던 '여고생 드래곤'을 박태준 만화회사에서 재밌게 보고 연락해 주셔서 연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채색까지 다한 야심찬 작품들은 모두 떨어졌는데 비교적 가볍게 그린 본작이 연재 되게 되어 아이러니한 기분이었습니다.

 

 

🍚 '드래곤의 몸에 빙의한 여고생'이라는 소재를 떠올린 계기는.

 

🖋️ 소재를 고르는 것 자체에는 큰 고민이나 계기는 없었습니다. '이고깽'(이계로 간 고등학생이 깽판을 친다)이란 말이 있듯이 이세계물과 고등학생은 한 세트나 다름없고, 드래곤도 판타지 세계라면 필수 요소입니다. 상투적인 소재 두 개를 붙여놓은 것뿐입니다. 안일한 것도 같지만 개인적으로 참신한 소재를 찾으려고 애를 쓰기보단 뻔한 소재로 참신한 이야기를 하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드래곤 몸에 빙의한 여고생'과 '여고생 몸에 빙의한 드래곤'이라는 한 쌍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빙의, 전생물은 빙의 된 주인공의 모습만 비춰주기 마련인데, 서로 몸이 바뀐 걸로하여 나머지 한 쪽을 자투리로 보여주는 구조를 쓰면 신선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계속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도 최근 유행하는 이세계물 주인공들이 고향을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고 다른 세계에서의 인생을 만끽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도리어 보기 힘든 유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고생 같은 발랄한 말투를 쓰는 드래곤과 중후한 옛날 말투를 쓰는 여고생이란 조합도,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개그 만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좋았습니다.

 

 

🍚 초기 버전과 실제 연재한 '여고생 드래곤' 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빠지거나 더한 등장인물은?

 

🖋️ 초기 버전은 5화 완결 단편으로 예정했었는데, 3화까지 그린 시점에서 정식 연재가 결정됐기 때문에 인터넷에 올렸던 부분과 실제 연재 된 부분의 내용 차이는 없습니다.

 

    단 원래 구상한 5화 분의 결말은 민지가 레드 드래곤을 물리친 뒤 마을의 일원이 되고 결국 집으로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는 열린 결말, 그 와중에 민지의 몸에 들어간 골드 드래곤은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골인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쪽 결말을 더 좋아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식 연재가 결정된 다음에는 민지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내용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같이 다닐 동료들이 필요해졌고, 리더 역할을 맡을 스미스와 감초 역할로 인기가 많았던 도미니크를 일행으로 정했습니다. 그 후 일행이 적어도 네 명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여성 주연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법사 한나를 추가했습니다.

 

    <마법진 구루구루>가 생각난다고 하시는 독자분들도 많던데, 실제로도 좋아하고 본작의 롤모델로 생각했습니다.

 

🍚 '여고생 드래곤'은 흑백인데다가 짧은 만화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웹툰 산업이 발전하면서 화려한 작화나 많은 컷 수가 성공 공식처럼 자리 잡았는데, 정반대의 작품이 나온 셈이다. 정식 연재 시작하면서 채색을 고민하지는 않았는지. PD의 우려는 없었는지. 그럼에도 채색을 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 사실 채색을 하지 말자고 한 건 제가 아니라 박태준 작가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오히려 다른 작품들처럼 채색을 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성의 없어 보일 수도 있고 채색은 해야 한다는 막연한 고정관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태준 작가님은 채색을 하거나 정돈된 그림으로 그리게 되면 이 만화 특유의 날 것 느낌이나 속도감 있는 개그가 죽어버릴 거라고 하셨고 저도 거기에 동의해 흑백 만화로 결정되었습니다. 채색 만화들과 비교하여 제공이 부족해 보이지 않게끔 짧게 주 2회 연재, 쿠키 1개로 박리다매 전략을 생각하신 것도 박태준 작가님이셨습니다. 결과적으로 다들 좋아해 주셔서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박태준 만화회사에서 처음에는 프로듀싱하려다가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보고 에이전시 계약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에 나올 뻔한 박만사 프로듀싱 버전은 지금 작품과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하다.

 

🖋️ 고백하자면 제가 실수를 했는데, 박만사 쪽에서 '만화에 이런 장면이 나오면 어떻겠냐'라고 가볍게 던진 아이디어를 '만화를 이런 식으로 바꿔봐라'로 잘못 알아듣고 1화부터 다시 그린 비운의 원고를 만들어냈습니다. 제 삽질을 프로듀싱의 결과라고 포장해 주신거죠.

 

    원고의 내용은 '여고생 드래곤'과는 다르게 현대 학교가 메인 배경이고, 다른 세계에서 봉인 당한 드래곤이 약골 소년에게 빙의 되어 무쌍을 찍는다는 학원 액션물이었습니다. 그 결과 회사의 색깔을 너무 의식한 것 같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채색 건도 그렇고 회사는 제 만화의 원본을 밀어줬는데 저 혼자 그대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 지레 겁먹고 헛발질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여고생 드래곤'은 일절 회사의 프로듀싱 없이 진행했습니다.

 

🍚 여러 성공 공식을 깨고 나온 '여고생 드래곤'에 대해 독자 반응이 좋았다. 어떤 점이 요인이라고 생각하는지. 과거 웹툰에 대한 향수나 천편일률적인 작품 사이의 의외성 등 때문일까?

 

🖋️ 위 답변들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도 성공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터라, 예상외의 호평에 깜짝 놀랐습니다.

 

    '여고생 드래곤'이 좋은 반응을 얻은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퀄리티의 웹툰들 사이에서 덩그러니 낙서 같은 그림으로 연재하는 만화가 있으니까 눈길을 끌었을 수도 있고, 말씀하신 것 처럼 정형화 되기 전의 과거 웹툰들에 대한 향수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독자 분들은 무조건 채색도 들어간 화려한 작화로 만든 웹툰을 더 좋아할 거라는 제 걱정과 달리, 성공 공식이란 건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고 독자분들은 고퀄리티 만화든 낙서 같은 만화든 재미만 있다면 평등하게 좋아해 주신다는 증거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단지 이렇게 얘기하면 '제 만화가 순수하게 재밌어서 반응이 좋은 거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네요.

 

🍚 통상적인 '회빙환'을 비튼 기발한 설정이지만 동시에 '설정 원 툴'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짧은 개그만화에 긴 서사를 붙이면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면?

 

🖋️ 단순히 드래곤이 된 여고생이라는 설정 하나만 가지고 모든 개그를 짰다면 설정 원 툴이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민지 한 명만이 개그의 중심이 되지 않게 모든 캐릭터가 저마다 개성을 가지게 했고 그 개성에 맞는 개그를 보여주도록 했습니다. 나중에는 민지마저도 '다른 세계에서 온 고등학생'이라는 설정보다 본인 고유의 얼빵한 성격에서 오는 개그의 비중을 더 늘렸습니다.

 

    그렇게 캐릭터의 성격을 활용한 개그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나중에는 배경이 바뀌어도 캐릭터들이 알아서 본인 성격대로 상황에 맞는 콩트를 보여줬습니다. 덕분에 긴 서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개그가 내내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 캐릭터들이라면 어딜 가더라도 좋은 케미를 보여줄 것 같았습니다.

 

    스토리 진행 쪽도 현자를 찾는다는 큰 목적을 잡아놓고 시작한 거라 끝까지 헤메는 일은 없었습니다. 굳이 힘든 부분을 찾자면, 마음만 같아선 익숙해진 캐릭터들로 사기꾼 잡상인이나 숲의 폐가 같은 소소한 개그 에피소드만 영원히 하고 싶은데 이야기는 끝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진도를 나가는 걸 계속 의식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 보너스 만화에 해당하는 김민지에 빙의한 골드 드래곤 이야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분량도 늘고 서사도 갖추게 됐다. 어느 쪽 이야기에 좀 더 애정을 품고 있나.

 

🖋️사실 본편 쪽 이야기가 더 제 취향이라 많은 분들이 보너스 만화가 더 재밌다고 하실 때 내심 슬펐습니다. 그래도 본편에서는 못하는 로맨스 장면나 진지한 장면, 민지의 예쁜 모습 같은 걸 그리는 건 저도 재미있다 보니 중반부를 지날 쯤에는 보너스 만화도 본편만큼 애착이 가게 됐습니다. 때로는 본편보다 더 고민해서 스토리를 짤 때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화에서 헤어진 골드 드래곤과 남자친구는 다시 만나지 않고 끝낼 예정이었습니다만, 캐릭터에게도 독자분들에게도 못할 짓인 것 같아서 재회하는 걸로 마무리 했습니다.

 

🍚 그래서 협곡은 '그 나라에서 가장 어떤 곳'인가? 민지 일행은 '스상·한숲'에서 어떻게 탈출했나?

🖋️ 협곡이 ‘그나라에서 가장 어떤 곳’인지와 민지 일행이 ‘스상·한숲’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십니다. 사실 정해 놓은 설정이 있었는데 작품을 진행하면서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에 큰 무리가 없다면 독자분들께서 각자가 상상하실 수 있게 하는 전개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린 결말이 아닌 열린 과정이라고 할까요? 다행히 독자분들도 재밌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죄송하게도 지금 이거다라고 말씀드리기 보다 조금 더 궁금해하시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추후 가능하다면 해당 내용을 다루는 번외편 등으로 독자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 액괴(액체형 괴물로 슬라임류를 일컫는다)는 일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함께 다니는지?

🖋️ 액괴는 처음에는 민지 일행, 특히 한나에게 복수할 요량으로 일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약해진 상태라 복수가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같이 다니던 와중에 (작중에서 보여주진 않았지만) 민지 일행이 챙겨주는 부분도 있었을 거고, 애초에 자기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 점도 있다보니 어느 새 미운 정이 들게 됐습니다.

🍚 김민지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남자친구뿐인지?

🖋️ 김민지의 남자친구도 민지가 드래곤이라는 것 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어렴풋이 원래 민지가 아니라는 것만 눈치챈 정도입니다. 민지가 워낙 특이한 아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진 못했지만, 만약 민지가 돌아오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 한두 명 씩 눈치챈 사람이 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저쪽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드래곤이 다시 남자친구를 찾아오게 되는지?

 

🖋️ 보너스 만화에 등장하는 노년의 한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적어도 수 십 년은 지난 이후입니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골드 드래곤에게는 찰나나 다름없는 시간이겠지만, 아마 일생에서 가장 긴 수 십 년이라고 느꼈을 겁니다. 한나가 과거의 이쪽 세계로 보내준 덕분에 남자친구에게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을 겁니다.

 

🍚 작품별로 타깃 독자층이 뚜렷한 경우도 많은데 '여고생 드래곤'은 남녀노소 모두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본다. 원래 폭넓은 독자층을 겨냥한 것인지.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만화 관련 원칙이나 소신이 있다면?

 

🖋️ 인터넷 밈이나 패러디가 많이 나오다 보니 비교적 어린 층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될 수 있으면 많은 분들이 두루두루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렸습니다.

 

    저는 독자들이 보기 편한 만화를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 합니다. 장르에 상관 없이 이해하기 쉽고, 보기 쉽고, 몰입하기 쉽게 그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이 여러 독자층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만화가 된 것에 일조한거라면 좋겠습니다.

 

🍚 완결 소감과 함께 차기작 계획도 궁금하다

 

🖋️ 머릿속에 그린 대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고 만족스럽습니다. 독자 분들도 좋아해주셔서 더할 나위 없습니다. 차기작은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땅콩 1인 제작 만화가 아닌 박태준 만화회사와의 협업으로 보여드릴 것 같습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장르를 그리게 돼서 두근대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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