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불교언론문화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웹툰이 수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어떤 계기로 지원하게 됐고 수상 예상했는지. 소감도 간단히 말해달라.
🖋️ = 지원하게 된 계기는 8월 말에 온 어느 메일 때문이었다. 평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하 빼들봄)'에 관심이 많으셨다는 한 팬분께서 불교언론문화상 공모전 참여 권유의 메일을 보내주셨다. 팬분께선 본인을 소개해주실 때 평소 불교 소재의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고 말씀해주셨다. 팬분의 순수한 열의가 담긴 메일로 인해 불교언론문화상의 존재를 알게 됐다.
처음엔 공모를 망설였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수상작을 보니 대다수 다큐멘터리, 방송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 웹툰이 깊은 불교사상보단 근현대 여성의 삶이 더 큰 주제였기에 이 공모에 맞는 작품에 맞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긴 고민 끝에 그래도 한 번쯤 넣어보자 하는 도전적인 마음으로 공모전에 응모했다.
수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독특한 경험을 했다 정도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더욱이 불교적 관점에서 내 작품이 인정받았다는 점이 작가로서 큰 영광으로 다가왔다.
🍚 데뷔 계기도 궁금하다. 공모전 수상작인데 얼마나 준비했고 어떤 것에서 모티브를 따서 작품을 구상하게 됐나.
🖋️ = 2018년도 졸업작품으로 제작을 시작하였다. 2019년도에 데뷔하였으니 준비기간은 1년 조금 넘게 걸렸다. 모티브는 내 태몽에서 따왔다. 엄마가 꾼 꿈인데 오래된 재래시장에서 스님과 소년을 마주했다고 한다. 스님은 엄마에게 "옆에 있는 소년을 대신 데려가 키워달라. 이 소년은 죗값을 치렀다" 라 말했다고 한다.
"죗값을 치렀다"라는 문장이 웹툰의 뿌리가 됐다. 죗값을 치렀는데 왜 이리 사는 게 고통의 연속일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위 질문에 찾아낸 결론으로 '인간도에 환생한 숙이가 갖가지 시련에서 극복하여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자' 로 도출됐다.
육도 중에 인간도는 선한 일을 쌓고 불법을 닦아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태몽이 특이하긴 하지만 난 이 꿈에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꿈이라는 건 그동안 경험하고 상상했던 것들의 융합체라고 생각한다. 그저 엄마가 들려준 재미난 이야기로 생각한다.
🍚 제목에 대해서 먼저 묻고 싶다. 이상화 시에서 따온 문장이다. 왜 이 문장을 따왔나. 이 제목으로 시작해서인지 읽을 때 계속 빼앗긴 이름, 빼앗긴 기회와 인생에 대해 의식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와 여성의 삶을 연결한 것인지 궁금하다.
🖋️ = 평소 근현대 역사와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창작자로 호기심 정도로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중 하나가 근현대 시집이었고 평소처럼 시집을 읽던 당시 우연히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읽게 되었다. 시 속에서 현재는 들을 빼앗겼다는 절망이 있는 동시에 봄은 올 것이다 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느꼈다.
평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문장이 '빼앗긴 것을 되찾자'라는 의미로 다양한 미디어, 언론, 콘텐츠에서 고유명사로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여성'이란 이유로 빼앗겼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만화에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하여 제목을 사용했다. 그렇기에 일제강점기와 여성의 삶을 연결할 의도는 없었다. 일제강점기는 민족의 아픔이기에 여성의 삶과는 다른 아픔이라 생각한다.
🍚 아주 전문적인 불교신화는 아니면서도 우리가 왜 절을 찾는지, 어떻게 거기서 위안을 얻는지가 잘 드러난 것 같다. 작가님의 종교는? 불교를 핵심 소재로 사용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풀어달라.
🖋️ = 무교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님 따라 절을 따라다녔다. 엄마가 보시함(布施函)에 돈을 넣고 부처님께 절하는 걸 옆에서 자주 보았다. 어릴 적엔 그 돈으로 맛있는 걸 먹지 왜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엄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됐다. 그때 종교의 존재 이유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이러한 경험을 4화 <지장보살>에서 드러냈다.
말씀대로 '빼들봄'은 전문적인 불교 신화가 아니다. 나는 불교를 넘어서 '한국적인 웹툰'을 그려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존재해왔던 불교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독특하게 샤머니즘과 불교가 융합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근현대 한국인의 삶을 그려내고 싶었다.
🍚 연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 제 '88년생 김경윤'의 삶은 그 정도는 아니었음에도 공감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주변의 가장 많은 감상은 '지금 그 정도는 아닌데 왜 오버하느냐'였다. 이에 대한 답을 찾은 게 이 작품이다. 숙이(해송)와 지민, 필남의 사정이 제각기 다르지만 서로 공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제 개인 감상에 불과하니 설명을 듣고 싶다. 이렇게 다른 사회적 계층, 다른 세대의 여성을 나란히 보여준 이유는 무엇인가.
🖋️ = 다른 세대 다른 계층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다 '나'라고 생각하면서 웹툰을 제작하였다.
기성세대 여성들 다수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 형제의 보조역할로 자라왔다. 현재는 비록 남아선호사상과 여성 차별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한들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가부장제로 인해 고통받는 젊은 여성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빼들봄`을 그리면서 그 틈을 좁히고 싶었고 젊은 여성과 기성세대 여성과의 가부장제 폐해로 인해 겪는 공감대의 시의성을 그려내고 싶었다.
🍚 스님은 아이가 꼭 '해송'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숙이는 이름을 뺏긴 채 살았다. 해송의 이름으로 살았으면 어떤 게 달랐을까? 뺏기게 된 배경은 가부장제이며, 그렇게 뺏긴 채 살아서 숙이도 남동생도 불행을 맛본 것일까.
🖋️ = 마지막 회에서 나온 스님이 기자신앙(祈子信仰)을 인용하며 이권례(숙이의 엄마)의 행동을 지옥에서 중생을 구제해주는 지장보살과 같았다며 말해준다. 그리하여 스님은 첫째 아이가 여성으로 태어난다면 이름을 빼앗길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1화를 그렸다. 당시 사회는 당연히 가부장제라는 삶의 기둥이 당연하다시피 존재했기 때문이다.
질문처럼 만일 그들이 가부장제가 존재하지 않는 가정에 태어났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줬을 것이다. 61화 <호접몽>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결국 호접몽은 제목 그대로 꿈에 불과했다. 가부장제는 여성도 남성도 모두 고통스럽게 한다는 걸 모두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린다는 걸 웹툰에 그려내고 싶었다.
🍚 작가님의 캐릭터도 코끼리고, 작중에서도 발목이 묶여 자란 새끼 코끼리 이야기가 나온다. 불교에서도 흰 코끼리의 의미가 특별하다. 왜 코끼리인가?
🖋️ = 어릴 적부터 코끼리를 정말 좋아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덤보' 때문이었다다. 디즈니의 '덤보'에서 덤보의 엄마가 덤보를 사람들 사이에서 구하려다가 결국 서커스 단장에게 벌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는 장면이 있다. 깊은 밤이 되었을 때 덤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와 재회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어린 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나를 지켜준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덤보를 감싸는 엄마 코끼리 코가 따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가족들 따라 자주 금산사에 갔는데 절에 보이는 흰색 코끼리를 구경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코끼리를 따라 그리다 보니 탱화에 관심이 갔고 자연스레 그림체에 불교적 색채가 녹아들게 되었다.
🍚 여성 등장인물들이 악역이 된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도 잘 풀었다. 오히려 보조 역인 엄마의 마음이 가장 설명이 안 된 것 아닌가 싶다. 금숙이가 시련을 겪을 때 나서서 막아주지는 못했으면서 무슨 마음으로 서울로 도망치듯 가라고 떠밀게 됐을까.
🖋️ = 149화 <사십구재(2)>에서 나왔다시피 숙이(해송)이는 온전히 내 삶을 살게 해준 엄마를 당연하게 여겼고 서른 살 즈음이 돼서야 엄마의 행동거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이 숙이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길 바라서 엄마의 마음을 일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는 집안에서 지위가 남동생인 해송보다 낮았다. 사람이 아닌 그저 집안일만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엄마는 자신의 위치를 알았기에 그저 묵묵히 숙이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라며 가족들 눈에 띄지 않게 숙이를 도왔다. 하지만 숙이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때 존재를 강하게 드러낸 것은 자신과 그리고 할머니와도 같은 삶을 살게 되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나타난 용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 연대와 극복은 있지만, 계승이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이후의 이야기를 짧게 축약해서 넘긴 이유는? 금숙이의 삶과 투쟁은 누가 이어받아서 가져가는가?
🖋️ = 계승은 웹툰을 제작한 나와, 웹툰에서 시의성을 느낀 독자들의 몫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빼들봄'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선 현재 삶에서 각자마다의 수많은 고해를 겪어도 겨우내 버텨내고 다시 일어서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대학 이후로의 삶을 굳이 길게 할 필요를 못 느꼈다. 웹툰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주제들은
이미 다 나왔었고 이젠 웹툰을 완결 지을 때가 됐다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같은 맥락에서 초기에 구상했거나 더 그리고 싶었지만, 전개 과정에서 넣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는지. 개인적으로는 지민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 = 완결된 작품을 뒤돌아 바라보고 아쉬웠던 점 하나가 있다면 선한 역의 존재들은 입체적으로 그려낸 것 같지만, 악역의 존재들은 평면적으로 다뤘다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그중 시즌2에 나온 박철중이 눈에 들어온다.
박철중은 호래자식이란 말을 들으며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성공에 목매는 캐릭터다. 그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맞다. 하지만 가정을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을 좀 더 살렸더라면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12, 13화에 <동병상련>에 나온 '연미자'란 캐릭터의 미래를 계속 구상하였는데 웹툰엔 그려내지 못해 아쉬웠다. 중년의 나이가 들고 자식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취미 미술을 하기 시작하였고, 엄마의 그림 솜씨에 놀란 자식들이 미자의 그림을 응원해주며 SNS에 올려 홍보하게 됨으로써 미자는 화가로서의 꿈을 끝까지 지켜냈단 이야기다.
지민이는 90년대 드라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김혜자 역할인 ‘정희’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어찌 보면 정희의 길이 될 수 있었던 피아노 공부를 지민이가 이루게 되었다 말해주고 싶다.
당시 '빼들봄'을 제작하던 19~20년도 초에는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에 극심한 분노가 있었다. 그래서 정희의 삶은 틀렸고 그는 마음 한편에 불행이란 감정을 가지고 살았을 거라는 나의 오만함에서 나온 캐릭터가 지민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정희의 삶에 응원해주고 싶고 내가 함부로 그의 인생을 불행이라 치부했던 것에 크게 반성하고 있다. 정희의 삶은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었기에. 그래서 지민이를 자세히 그려낼 수 없었다. 지민이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 말하자면 분명히 집안끼리의 정략결혼 때문에 한번은 억지로 결혼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혼하고 난 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하며 살았을 거라 생각이 든다. 숙이와 꾸준히 연락하며.
🍚 군부 독재기 대학가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남자는 장발이고, 운동권 여성은 짧은 머리라 캐릭터 성별 구분이 문득문득 안 될 때가 있었다. 불상에서 여성과 남성의 형상이 모두 드러나듯이 일부러 성별 구분 없이 연출한 부분인지 궁금하다.
🖋️ = 70년대 미국의 히피 문화로 인해 우리나라에 남성의 장발 문화가 들어왔다. 그리고 남자 장발을 단속하는 행위는 폐쇄적인 독재를 상징하였고 장발은 자유의 상징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실제 70년대 당시 장발의 남성들이 다수 존재하였기에 사람들은 뒷모습만 보면 남녀 구분이 가지 않아 혼란을 일으킨단 에피소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차용했다.
동시에 운동권 여성들은 스테로이드 타입이라 불리는 ‘여성성`처럼 입고 다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기에 남자보다 짧은 머리를 하고 셔츠와 바지를 입고 다녔다는 고증자료들을 보았다. 위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류화영, 이성호, 윤상철이란 캐릭터를 제작했다. 류화영의 외모는 의도된 것이다. 아마 화영이는 1학년 입학할 당시엔 긴 머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을 것이다.
🍚 작중 에피소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무슨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 = 10화 <여명>, 61화 <호접몽> ,<시즌2 에피소드 3개>이다.
10화 여명은 불교 신자인 당숙 이모님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이모님께선 “내가 이리 고통스러운 이유는 전생의 죄 때문이고, 이 죄를 씻기 위해 현재에 환생하여 봉사하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당시 그말을 들은 나는 이모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전생의 나는 다른 존재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왜 내가 치러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불교의 윤회사상에 대한 억울함을 포효하는 회차였다.
61화 <호접몽>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_병원>을 인용하였다. 선생님이 필남에게 처음으로 병원이란 시를 알려줬을 땐 필남은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살았지만 성인이 되어 서울로 떠났을 때 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부장제로 인해 가족들에게 희생당하는 여성들이 가족이란 강압적인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자기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다.
<시즌2 에필로그 中_은신처> 회차의 댓글 중에 "마냥 가해자 같던 당신도 결국 피해자였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 겪지 않길"을 보고 서글프게 울던 기억이 난다. 철중의 엄마는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모티브로 제작했기 때문이었다. 친할머니를 토대로 왜 웹툰을 제작했냐면 어릴 적엔 이해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행동을 웹툰을 제작하면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 데뷔작을 완결 냈다. 다음에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 = 현재 차기작('초록빛 아래서'라는 이름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공개됐다)을 제작 중이다. 천계영작가님의 <좋아하면울리는>의 세계관을 넓히는 '좋알람 유니버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좋아하면울리는'이란 어플을 인용하여 나만의 오리지널 웹툰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번 차기작도 불교를 인용하였지만 빼들봄과 다른 방향으로 불교를 사용하였고
가볍게 웹툰을 볼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앞서 말한 한국적인 작품을 하고 싶단 부분에 더 맞춰진 한국 판타지 현대로맨스 장르이다.
추후 나중에는 근현대회화작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평소에 근현대회화에 관심이 많고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20세기 화가가 되고 싶은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떤 가치관과 그림체로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정말 가벼운 이야기도 생각하고 있는데 '김치를 먹지 못하는 한국인'을 모티브로 한 현대물도 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김치를 못 먹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초등학생 급식 시간 때 강제로 김치를 먹이던 트라우마가 선명하다. 요즘은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행위를 아동학대로 여겨 급식을 남겨도 된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현재도 삼겹살을 구울 때 김치를 옆에 같이 굽는 행위나 볶음밥에 김치가 당연하게 들어가는 음식들이 너무 버겁다.
'김치를 못 먹는 나 같은 소수의 한국인이 어딘가에 또 있지 않을까?' 하는 코미디스런 감정에서 생겨난 아이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