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웹소설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 각색에 부담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웹소설과 웹툰의 문법은 다르기 때문에 노블코믹스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는 각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각색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과 즐거운 점을 하나씩 들어주면 좋겠다.

🖋️ = 아무래도 무대 장면의 연출이 가장 어렵습니다. 물론 다른 장면들이 쉬운 건 아니지만, 무대는 물리적으로 상당히 큰 품이 들기도 하고, 제가 가장 소흔 작가님께 많이 (작화 연출을) 기대야 하는 부분이라 특히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외에도 판타지 파트(상태창), 다인물 배치, 분량 조절, 캐릭터성 등등... 고민하고 결정할 게 정말 많기는 합니다. 생각해 보면 각색 자체가 참 어려운 작업 같습니다.

    의외로 레퍼런스를 모으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특정 연예인이나 무대가 떠오르지 않도록 굉장히 신중하게 레퍼런스를 모으고 있는데, 원작의 무대파트를 읽고 정리한 다음, 소흔 작가님과 회의를 하고 제가 아는 케이팝 빅데이터 바다에서 필요한 걸 뽑아 쭉 정리해두면 뿌듯하면서도 재밌습니다. 저는 전체적인 서사와 맥락에 대한 레퍼런스를 많이 하고, 소흔님은 디자인 요소나 미적 요소에 대한 레퍼런스를 많이 하시기 때문에, 둘을 합치면 또 새로운 형태의 응용들이 나오고, 이걸 우리 무대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게 특히 즐겁습니다. 답을 정해두지 않고, 있는 대로 연상되는 레퍼런스들을 죄다 갖다 붙여보면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본다는 점이 재밌는 것 같아요.

🍚 원작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말인 즉슨 많은 부분은 독자의 상상으로 남겨두고 서술을 생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각색하면서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빈칸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 = 좀 사소한 부분인데, 초반에 문대가 부르는' 파티 인 미'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티홀릭'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막내가 낸 솔로곡이란 설정이 있었는데, 문제는 아무리 찾아봐도 이 친구의 이름이 없었단 거예요. 결국 제가 이스터에그처럼 쓰는 '윤'이란 이름을 임시로 붙여놨었습니다. 그 외에도 차트에 나오는 가사나 음악들을 전부 일단 임시로 적어뒀었는데, 그대로 통과가 되어 멍멍이 천지인 이상한 가요계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원작의 세상에 제가 이렇게 설정을 얹어도 되나... 이럴 때 가장 고민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은 슬쩍 보고 넘어간다고 해도, 누군가에겐 그게 오피셜 설정이 되기도 하니까요. '데못죽'은 특히 시원시원한 서술이 장점인 만큼, 세부적인 디테일들은 과감하게 생략된 부분도 많아, 시각 구현을 할 때 특히 레퍼런스를 참 많이 찾아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소흔님도 저도 레퍼런스 모으는 걸 너무 좋아해서 또 나름대로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 단체곡 미션에서 주식의 등락을 표현한 시그니처 손동작이 인상 깊었다. 이처럼 원작에는 없었지만 있을 법한 요소로 채워나간 각색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시그니처 손동작을 넣을 생각을 했고 왜 이렇게 만들었을지 배경을 좀 더 풀어주면 좋겠다.

🖋️ = '아이돌 주식회사'(아주사)의 메인 컬러와 디자인을 정할 때, 주식을 컨셉으로 접근했었습니다. 당연히 주식 관련 아이콘이나 디자인, 용어 들을 모티브로 작업하게 됐고, 시그니처 손동작도 그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각자 시그니처 동작을 시그널송에 넣는 경우가 많아서, 아주사에도 그런 게 있었으면 했어요. '주식 이미지'를 모아놓은 폴더를 보면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다가, 손으로 주식 그래프를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제의를 드렸더니 소흔님께서 우상향으로 고증까지 지켜(!) 반영해 주셨습니다. 사실 아주 멋진 동작은 아닌지라, 당시엔 그냥 웃기기라도 하면 그건 그것대로 블랙코미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다들 정확히 의도대로 즐겨주셔서 뿌듯했습니다.

🍚 시그니처 포즈 이외에도 단체복이라든가 아이돌 주식회사 로고 등도 각색 작가의 의견이 반영된 것일까? 작화 작가와 이런 원작에 없는 부분들을 어떤 논의를 거쳐 만들어내고 있는가.

🖋️ = 맞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제가 콘티를 드리면 소흔님이 디자인할 요소들을 뽑아서 정리한 후에 작업하시고, 저는 완성본에 간단한 의견 정도를 드리는 식으로 진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예 없는 쇼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야 하다 보니, 굉장히 사소한 부분까지도 디테일이 필요한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레퍼런스라도 모아드려야지 하고 조금씩 의견을 공유하는 게 점점 길어져, 결국 초반은 매일 화상회의로 작업들을 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둘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소한 것들까지도 서로 소통하며 거의 실시간 컨펌과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사실 주요 디자인 작업등은 다 그림 작가님께서 하셨고, 전 주로 옆에서 "초반엔 화제성이 낮아서 이런 재질을 쓰기엔 제작비가 적지 않았을까요?" "이 정도 무대는 '아주사' 세트장 규모에선 구현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같은... 이상한 데서 현실적인 태클을 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어떤 것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게 어쩌다 그 자리에 있는지, 어떤 식으로 생겼을지, 주변에 어울리는 소품이 뭐가 있을지 등을 상상하며 최대한 비슷한 레퍼런스들을 정리해 전달해 드리고, 소흔님이 동의하시면 본격적인 목업에 들어가는 거죠. 

🍚 '남팬만화'를 재밌게 봤다. 개인적으로는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외롭고 지치는 아이돌의 삶에 대한 연민이 읽혔다. '아이돌 주식회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팬들이 투자를 받기 위해 기대에 부응하려는 연습생들의 모습이 나오지만, 사실 이건 상품으로 보는 관점에 가깝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아이돌에 대해, 팬과 아이돌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 아이고. '남팬만화'를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_ _) 제가 이전 '남팬만화' 관련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아이돌과 팬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관계'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과 미움과 연민과 동료애나 슬픔이나 우정과 같은 것들이요. 그 시점에서 몇 년이 더 흐른 지금, 제 생각에 아이돌과 팬은 서로에게 일종의 '시절'을 대표하는 것 같습니다. 특정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듯이, 그때 빛났던 아이돌을 마주하며 그때 당시 열렬하게 살아갔던 나 자신의 빛나는 시절도 꺼내볼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제가 아이돌을 해보진 않았지만) 자신이, 그리고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통해 그 시절을 돌이켜 보는 것. 정말로 흔하면서도 흔치 않은 경험일 거라 생각합니다. '데못죽'을 읽고 사랑하시는 분들도, '데못죽'의 친구들을 보면서 지금의 시절들을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 작업 이전에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을 읽었는지, 어떤 점에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지도 짧게 부탁드린다.

🖋️ = 저는 제의를 받은 후 작업을 위해 작품을 처음 읽었습니다. 작품을 잘 모를 때라, 처음엔 제안이 온 장르가 아이돌물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좀 더 무대나 비주얼적인 묘사가 들어간 경연 아이돌물을 작업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거든요. '데못죽'은 주인공의 목표가 뚜렷하고, 경연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짜여 있으면서도 중복되지 않습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잘 연출한다면, 다양한 볼거리와 흥미진진함을 동시에 잡는 아이돌물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계약 이후, 그 사이 작품의 인기가 제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어, 회사에서도 꽤 큰 프로젝트가 되어 버린 게 오히려 변수라면 변수였던 것 같습니다. 뒤늦게 부담도 느끼고 제가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결국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아는 걸 모두 쏟아서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실제로도 정말 그렇게 했고요. 첫 무대 장면(13화)의 경우엔 3~4개월을 매달리며 열 번 넘게 콘티를 고치고 또 소흔님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수정했을 만큼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만큼 재밌고 훌륭한 원작이었기 때문에 이만큼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같아, 제 마음과 좋은 작품과의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아이돌 주식회사'의 시청자였다면 어떤 출연자의 주식을 매수했을 것 같은지. 데뷔조에 들지 못한 등장인물 중에 가장 눈에 밟히는 인물이 있을까?

🖋️ = 사실 저랑 소흔님은 모든 엑스트라를 일일이 체크하고 그리다 보니, 어쩌다 아주사의 꼴찌 캐릭터인 '추성구'캐릭터를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7화에 가장 처음으로 평가하게 된 캐릭터) 오랜 작업의 여파인 건지 정신을 차려보니 이 친구가 사실 제법 재산가의 아들인데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아주사에 나온 게 아닐까, 탈락 후에는 프로 골퍼가 돼서 활동하지 않을까, 성격이 착해서 꼴찌여도 다른 참가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지 않았을까 같은 서사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사실 주요 캐릭터들은 뭐랄까…. 내가 마음껏 기능할 수 있는 극 속의 캐릭터라기보단, 우리 팀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동료 같은 존재로 더 많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런 엑스트라 친구들에게 디테일한 설정을 농담으로 부여하며 저희끼리 웃고 작업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캐릭터를 친구처럼 느끼고 정 붙이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