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기사 군터

🍳 ‘안티 히어로’의 끝을 보여주다

    「시체기사 군터」는 228전 228승을 기록한 최고, 최후의 검투사가 인류의 희망이 되어 뱀파이어가 키운 괴물들과 싸워나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군터는 전형적인 ‘안티 히어로’다. 어려서부터 싸움 기계로 키워진 그에게 정의감이나 인류애와 같은 숭고한 감정은 없다. 신체 대부분을 잃은 자신의 유일한 에너지원이 되어주는 ‘동력 인간’ 아리엔과 ‘계약’에 따라 싸움을 지속할 뿐이다. 전란의 와중에 머리와 몸체만 남은 그는 사지를 ‘교체’해가며 싸우는데,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창의적으로 기괴한 그의 모습은 비주얼 측면에서도 안티 히어로로서의 특징을 명확히 한다.

🍳 선악의 이분법에 질문을 던지다

    ‘인티 히어로’ 장르의 매력은 선악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야기적으로도 이런 요소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군터가 지키려는 인간들은 왕부터 병사까지 대체로 어리석거나 악랄한 반면, 인류의 말살을 꾀하는 흡혈귀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다른 인간에게 학대를 당한 아픔을 지니고 있다.

    「기생수」(*이와아키 히토시의 유명 작품. 연상호 감독 연출로 한국판 드라마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가 인간을 포식하는 외계 ‘괴물’들이 어쩌면 자연 입장에서는 ‘백신’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것처럼, 「시체기사 군터」도 인간이 선이고 괴물이 악이라는 이분법에 의문을 던진다. 이 의문 자체는 익숙한 것이지만, 효과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무기 삼아 ‘160km 포심’처럼 빠르고 묵직하게 날아온다.

🍳 제2의 베르세르크? 아니, 새로운 군터!

    작품을 언뜻 보면 파괴적 무력을 뽐내는 결함 있는 성격의 주인공, 중세적 디스토피아 세계관, 기괴하지만 매력적인 괴물, 음영이 강조된 선 굵은 그림체 등 고(故) 미우라 겐타로의 역작 「베르세르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가의 주제 의식이 부각되면서 「시체기사 군터」만의 개성이 선명해진다.

    선과 악이, 삶과 죽음이, 과거와 미래가 덧없이 교차하다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질문에 도달하는 순간, 이야기는 절망의 뒷면에 숨어있던 희망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75화까지 무료 공개됐다.

🍚 '가비지타임' 완결과 거의 동시에 '오늘의 우리만화'(2023년)를 수상하게 됐다. 딱 맞는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깔끔한 마무리 또는 버저비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완결과 수상 소감을 함께 여쭤본다.

🖋️ = 과분한 상을 받게 되어 황송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엘리트 운동부와 그들의 입시, 진로, 생활 등의 이야기가 그간 창작물에서 그려지지 않았던 소재이다 보니 만화를 그리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만화를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자문을 도와주신 강양현 감독님, 김태원 담당자님, 그리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상에 걸맞은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이 만화를 추천받을 때 빠지지 않고 들었던 말은 '한국판 슬램덩크'였다. 농구 만화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여러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래도 만화깨나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슬램덩크'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지 않나. 이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 = 역시 과분한 칭찬이라 생각합니다. 슬램덩크는 스포츠 만화 연출에 알파벳을 정립한 작품임과 동시에 소년만화 연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에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 동시대 실화에 기반을 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각색하는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도 든다. 실화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를 변주한 가운데서도 '이것만큼은 실화랑 똑같이 하자'라고 한 요소가 있다면?

🖋️ = 사실 생각하신 것보다 훨씬 자유롭게 각색하였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점, 즉 실화의 부산중앙고와 만화 속의 지상고가 처한 상황 등만 모티브로 설정했을 뿐, 스토리라든가 캐릭터, 경기내용 등은 프롤로그의 안내문에 써놨듯이 완전한 창작입니다.

🍚 후기에서도,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씀해주셨지만 다시금 질문드린다. 왜 마이너 장르로 꼽히는 스포츠 웹툰, 그중에서도 농구, 또 생소한 엘리트 체육 만화를 그리셨는지.

🖋️ = 아무래도 엘리트 체육이라는 소재가 생소하다 보니 인기를 끌기 힘들 것이기에 ‘내가 아니면 아무도 우리나라의 엘리트 운동부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려주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농구를 선택한 건 아무래도 4대 프로 스포츠 중 대학 진학의 중요성이 가장 큰 종목이다 보니 독자들에게 ’입시‘라는 그나마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선수 출신이 그린 만화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묘사가 생생하다. 자문의 역할도 컸을 것 같다. 강양현 감독에게 SNS로 처음 연락을 했다고 들었다. 자문은 어떤 방식으로 몇차례에 걸쳐 이뤄졌나. (엘리트 체육 이야기의 밑그림을 그리게 해 준 중고등학교 동창, 사투리 자문위원 등에게 '샤라웃' 해주셔도 좋다.)

🖋️ = 정확한 횟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양산에 내려가서 감독님을 만나 뵙기도 했고, 감독님이 서울로 올라오셨을 때 만나 뵙기도 했습니다. 농구에 관한 지식들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원래 농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뭣보다 요즘은 유튜브에 조금만 검색해 보면 수준 높은 리그의 풀 경기를 볼 수 있는 시대니까요. 어려웠던 것은 운동부 학생들의 생활 전반에 관한 것들(운동부 문화, 대회 규정, 하루 ~ 1년 일정, 입시제도 등)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중점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연재를 시작하고 나면 조사를 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연재 준비 기간에 최대한 그런 지식들은 완벽히 준비해둘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 선수 출신은 아니더라도 농구를 직접 하기도 하고 좋아한다고 봤다. 웹툰을 그리다가 막혔을 때 경기를 보러 가거나, 직접 길거리 농구를 한 경험이 있을까?

🖋️ = 농구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꾸준히 했습니다. 길거리 픽업 게임은 물론이고 작은 대회들도 나갈 정도로요. 하지만 웹툰을 시작하고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농구가 워낙 격한 운동이다 보니 부상 위험이 크기 때문에 연재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됐거든요. 주간 연재가 일정이 빡빡해서 연재 중엔 직관도 한번 가지 못했습니다.

🍚 국가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농구팀, 선수를 하나씩 꼽아주신다면?

🖋️ = 시카고 불스 (유니폼이 예뻐서+조던) , 드웨인 웨이드 (플레이스타일이 멋져서)

🍚 '가비지타임'에서의 역전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혹시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는지.

🖋️ = 웹툰에도 소재로 사용했던 ‘티맥타임’(*2004년 휴스턴과 샌안토니오의 경기로 휴스턴의 에이스였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35초 동안 13점을 득점한 것을 의미함)을 가장 좋아합니다. 스타팅 멤버가 뛰고 있었기에 가비지타임이라고 부르기는 힘들겠지만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점수 차와 시간대에 역전이 나온 명경기였거든요.

🍚 농구와 그림 사이에서 고민하는 진훈정산의 김기정에 작가님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나. 그림에는 승패가 없다는 대사가 인상적이라서 여쭤본다. 기정이가 아니라면 어떤 캐릭터가 작가님의 어떤 성격을 닮았을까? 닮지 않았더라도, 독자들에게 별 인기는 없지만 작가님은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는지?

🖋️ = 사실 기정이에게 제가 많이 반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림, 미술학원 등의 소재를 선택한 건 단순히 제가 경험했던 일이기에 별다른 조사 과정 없이 바로 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미술 입시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다른 것을 소재로 같은 메시지를 그렸을 거 같습니다. 저와 닮은 캐릭터는 딱히 없다 생각하지만, 지상고 부원들이 저의 부분적인 요소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호의 지질함, 다은이의 오타쿠스러움, 태성이의 성질머리, 재유의 과묵함 등등이요. 실제 사람은 창작물 속 캐릭터보다 훨씬 입체적이거든요.

🍚 어떻게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나. 처음 결심한 계기, 데뷔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신다면. '가비지타임'으로 최강자전에 도전했을 때가 작가님의 가비지타임은 아니었는지도 궁금하다.

🖋️ = 저는 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 사실 졸업 상영회를 할 때까지 진로에 대해 계속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학과 공부에 대한 흥미도 딱히 없었고 농구동아리, 밴드 동아리활동만 열심히 하면서 동아리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는 부류의 학생이었기에 학과에는 이름을 아는 친구도 별로 없었습니다. 당연히 졸업작품도 혼자 외롭게 준비해서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졸업 상영회 날, 그 이름도 모르는 학과 친구들이 제 졸업작품 포스터가 걸린 액자에 포스트잇으로 '작품 잘 봤다.', '편집이 멋지다.', '재능이 있어 보여서 계속 관련 분야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이런 격려 메세지들을 남겨줬습니다. 그때 뭉클했던 감정 덕분에 계속 창작을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과 가까운 웹툰작가를 목표로 하게 됐고, 졸업한 해부터 웹툰을 준비하기 시작해서 그해에 바로 네이버 최강자전에 '가비지타임'을 투고했고, 운 좋게 첫 시도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 이따금 작가는 자신의 만화를 닮아가고, 작품의 생애는 그 내용을 닮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비지타임'은 최강자전 8강 작이었고, 초반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작품이었지만 어느 순간 치고 올라와서 상위권에서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지상고를 닮았다는 느낌도 든다. 팬심으로 인한 과한 해석일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신지.

🖋️ = 독자분들께서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공감합니다.

🍚 일상 파트와 경기 파트가 적절히 분배돼 있다. 경기 장면에서는 손을 꽉 쥐고 한 컷 한 컷 아끼면서 내려 보다가도, 또 일상 파트에서는 편하게 풀어질 수 있었던 점이 지치지 않고 가비지타임을 볼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완전히 정극으로 가지 않고 군데군데 개그를 많이 섞은 이유가 있을까? 원래 너무 무거운 이야기는 원하지 않은 것인지?

🖋️ = 아무래도 학생들의 입시와 진로가 소재이니 만큼 분위기가 어두워지기 쉬운데,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개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완결 내고 숨 돌린 작가님께는 가혹하지만, 차기작 계획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신지.

🖋️ =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스쿨밴드 소재의 만화와 SF 배경의 러브코미디 만화, 이렇게 두 가지를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습니다.